오래 전 일입니다. 술을 마시고 얼굴이 빨개진 채 운전을 하던 제 친구는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제 친구는 원래 대범한 놈이기도 했지만 경찰이 “왜 얼굴이 빨갛냐? 술 마신 거 아니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난 인디언이라 원래 얼굴이 빨갛다. 지금 인종차별 (racial discrimination)하는거냐?”라고 대답했습니다. 친구도 놀랠 정도로 당황한 경찰관은 “나는 절대 인종차별 의도는 아니었다. 오해했다면 정말 미안하다”라고 하며 그냥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미국 내 아시안의 수가 많아진 요즘에는 이러한 장난이 통하지 않겠지만 이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인종차별에 예민한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사회적 금기사항입니다.
최근 뉴욕 타임즈는 한국인 네일업자들이 이러한 인종차별을 서슴없이 하는 집단으로 표현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The Price of Nice Nails”, 2015년 5월 7일자). 해당 기사는 뉴욕 네일 업계 전반의 저임금이나 부당대우 등 네일 산업의 문제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뉴욕시 네일샵의 70-80퍼센트가 한국인 소유라는 점을 언급하며 “인종 계급 제도”라고 소제목을 잡은 문단들에서는 한인 업소 전체가 인종 차별 (racial discrimination)을 하고 있는 듯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비한국인 직원들은 점심을 작은 부엌 구석에서 서서 먹지만 한국인 직원들은 각자 책상에 앉아 점심을 편히 먹는다”, “[한국인 미용사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죠…왜 우리를 차별하는 건가요? 우리 모두는 똑같은데”라는 내용과 같이 자극적인 내용을 서슴없이 포함하였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한 개인의 증언으로 표현했지만 신문 기사를 읽고 나면 마치 네일업계의 모든 한국인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기사를 곧이 곧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한국인들이 사회적 금기인 인종 차별을 저지르는 무례한 집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 저 또한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몹시 상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자 합니다. 과연 한국인 네일 업계는 뉴욕타임즈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할 수 있을까요?
명예훼손 (Defamation)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고소인(원고)는 1) 해당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2) 이 내용이 글 혹은 말로 제 3자에게 전달되었고 3)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제 3자에게 전달된 것은 피고의 잘못이며 4) 이로 인해 고소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번 뉴욕타임즈 사태의 경우, 해당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고소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상대가 뉴욕타임즈라는 신문사이기 때문에 이 케이스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신문이나 방송매체들은 미국 헌법이 규정한 언론의 자유에 대한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문이 사설을 통해 어떤 단체나 정부 기관, 인물을 비판 한다고 해도 이는 신문사의 의견으로 보기 때문에 신문은 언론의 자유에 따른 보호를 받고 상대는 명예훼손 소송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뉴스나 신문 기사는 100% 사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실 (substantially true)”이라면 보도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번 기사의 경우, 그 내용이 “대체로 사실”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가 논쟁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뉴욕 총영사관은 사태 파악에 들어갔고 뉴욕한인학부모협의회는 뉴욕타임즈에 항의 서한을 발송하고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뉴욕 타임즈의 기사가 네일 업계 전반의 복지 향상에 도움을 준다면 좋겠지만 기사로 인한 한국인 네일업자들에 대한 오해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겠습니다.
명예훼손 관련 문의사항이 있으시거나, 독자 분들께서 알고 싶으신 법률이 있으면 주저 마시고 mail@songlawfirm.com으로 문의해주세요. 다음에 쓸 컬럼에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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