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24)한국신용데이터 김동호 대표
1년 전인 2016년 1월경 김동호 당시 아이디인큐 대표의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회사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장은 좀 쉬면서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미 아이디인큐의 오픈서베이로 성공을 거뒀고, 한동안은 쉴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움직였다. 한국신용데이터 김동호 대표는 첫 창업에 나선 지 5년여 만에 성공과 재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IT 밖에서 기회를 발견하다
그를 만나 우선 듣고 싶었던 것은 잘 되고 있는 회사에서, 그것도 창업자가, ‘왜 나왔는가’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돼 다시 시작한 것도 궁금했다.
그는 “창업자라고 해서 그 회사를 꼭 계속 경영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0에서 1을 만드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1에서 2나 3을 만드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0에서 1을 만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보다 그 일을 해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거구요.”
아이디인큐가 이미 창업자 없이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꾸려져 돌아가고 있다는 거도 그의 이런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패기와 열정으로 회사를 꾸려나가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 순간이 오더라구요.”
작년 초에 그가 회사를 나올 때만 해도, 그는 정말로 최소한 1년 간은 그냥 쉴 생각이었다. 병역특례 시절 3년, 창업 5년까지 총 8년을 쉴 새 없이 일했다는 생각. 잠시 좀 쉬어도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그냥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대부분 IT쪽이 아닌 사람들이었죠. 주류도매업, 음식점업 이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너무나 좁은, IT 창업 분야에만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벤처기업, 특히 IT쪽 스타트업들은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하는 분야쟎아요. 그래서 투자 과정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죠. 그런데 IT 분야를 벗어나보니 사업가들이 투자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반 자영업은 물론이고 제조업이나 다른 중소 사업가들 가운데에는 투자를 받고 싶어도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출조차 쉽지 않았다. 사업자들 대출이 크게 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는 대부분 부동산 임대업자들이 받는 대출이 늘었기 때문이고 실제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일반 사업자들은 대출조차 받기 힘들었다.
왜 대출조차 이뤄지지 않을까. 금융권이 대출을 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들의 재무 상태나 리스크, 향후 수익 전망 등이 불확실하기 때문.
“국내에 등록된 사업자 수가 총 341만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중 99.7%는 중소사업자입니다. 문제는 신고소득과 실제 소득의 괴리에요. 30%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이건 저희가 하는 말이 아니고 학자들이나 세무업계에서 분석한 겁니다. 문제는 이렇게 차이가 나다보니 금융권에서 볼 때 대출을 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보고 대출을 안 해 줍니다. 그러니 카드론이나 사채 등으로 가는거죠.”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궁금하니까’ 알아봤다고 한다. 이런 일이 왜 생길까 궁금해서 알아보다보니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것에 결론이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Right Time
이런 문제의식을 김 대표 혼자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텐데. 지금까지 왜 아무도 신뢰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대출을 잘 해주는 일이 중요한 은행으로선 충분히 개인 사업자들이나 자영업자들, 중소 법인 사업자들에 대한 재무분석, 신용 분석에 나설 만한데 말이다.
그는 이유를 두 가지에서 찾았다. 우선 중소 사업자들에게 대출을 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 필수적인 자료가 갖춰진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세무사소들이 사업자들의 매출 자료를 받아서 전표와 대조해보면서 수기로 작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가세금계산서, 신용카드 전표, 현금영수증 등이 모두 갖춰져 전자식으로 매출 내역이 한 눈에 드러나게 된 것이 불과 최근 4-5년의 일이다. “사업자들의 소득원이 전자화되고 복식부기 대상자로 국세청에 등록된 것이 최근 1~2년에 생긴 일입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누가 하고 있었더라도 서비스를 만들어낼 시간이 별로 없었던 거죠.”
결국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는 것. 또 다른 이유는 금융기관들의 수익구조와 관련된 문제였다. 어쨌든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선 누군가 사람이 투입되야 하는데 엄청난 인력을 지점에서 고용하고 있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서비스 인력이지 분석을 따로 하는 인력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만개에 달하는 자영업소 및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인력을 별도로 채용해야 하는데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치 않았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연간 400조원에 달하는 대출이 이뤄지는 중소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출 시장이 제1금융권을 벗어나 진행돼 왔던 것이다. “2011년 아이디인큐를 창업할 때랑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시장의 수요는 있는데 아직 초기다보니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거죠.”
김 대표는 이를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사람이 아닌 기계가 이런 모든 작업을 하게끔 구조를 짜겠다는 것. 이를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 역시 프로그래머였지만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분석하고 금융공학적으로 풀어낼 사람이 필요했다. 때마침 이런 일을 해 줄 만한 인물(양웅철)이 스타트업 프로그램스를 막 나온 참이었다. 김 대표는 아이디인큐 시절 제품본부장을 했던 안태훈, 프로그램스 개발팀장이었던 양웅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 및 정보시스템 박사인 임현석, 같은 대학 경영공학 석사 출신의 이승렬 등과 함께 한국신용데이터란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2016년 6월이었다.
CreditCheck & CashNote
한국신용데이터라니. 뭔가 회사 이름이 대단히 공기업 또는 오래된 상장회사 같은 그런 느낌이다. 최소한 막 시작한 스타트업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만난 김동호 대표의 옷차림이나 분위기 역시 그랬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과 흡사한 느낌마저 풍겼다.
김 대표는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며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웃었다. 주된 사업 파트너가 금융권이다보니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신용데이터가 2016년말 출시한 크레딧첵(CreditCheck)은 사업자의 금융거래 데이터를 비대면 방식으로 수집해 상환 능력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서비스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대출을 신청하는 사업자가 은행 등 금융회사 사이트에 대출 신청에 필요한 항목을 입력하면서 한국신용데이터가 데이터를 캡쳐해가는 것에 동의만 하면 된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이런 동의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 국세청과 은행 등에 신고된 사업자의 사업 관련 재무 정보, 세무 정보 등을 분석해 은행권에 제공해준다. 현금흐름을 분석해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다보면 사업자가 신고하는, 또는 작성하는 데이터의 신뢰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았다. 만약 이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다면? 여전히 사업자의 소득 신고 및 사업 신고 내역이 정확한지, 얼마나 실제에 부합하는지는 여기선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캐시노트라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
크레딧첵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캐시노트는 세금계산서, 카드 및 계좌 내역 등 다양한 금융거래 정보를 한데 모아 회계 장부를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서비스다. 이는 결국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는 기초가 된다. 사업자로서는 복잡한 회계지식 없이도 통합적인 재무관리를 할 수 있다.
캐시노트가 정말 잘되면 크레딧첵의 역할은 줄어들게 된다. 이 서비스는 이달 중 출시할 예정이다. 캐시노트는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전자적인 각종 소득 및 지출, 비용 증명서 등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이 서비스가 확산되고 정착되면 크레딧첵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세무사 회계사 사무서에서 하던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한국신용데이터는 그야말로 국세청에도 없는 연도별 매출, 수익, 소득 등 각종 재무 정보를 수집해 분석, 축적하게 된다.
그에게 다시 창업을 하니 어떠냐고 물었다.
“확실히 시행착오는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줄일 수 있었죠. 사실 사업을 처음 할 때 헤매는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잘 정의하지 못하는 것과 팀 세팅을 잘 못하는 것 두 가지 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째 창업한 회사에서 나와서 쉬면서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마침 비슷한 서비스가 없었구요. 팀 세팅은 확실히 첫 창업의 영향이 있었구요. 이래저래 운이 따라 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