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기 대표
다들 일자리 구하기 어렵다고 난리다. 공급(구직자)이 수요(일자리)보다 많으면 기업은 낮은 가격에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에 가도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력시장에서는 경제학의 기본 수요 공급 원칙이 좀처럼 통용되지 않는다.
‘인재’라는 상품의 가치를 정량화 시킬 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학력 등 속칭 ‘스펙’이 좋아도 불성실하거나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층면접 등 다양한 방법을 쓰지만 길어야 10분 안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해외 기업들은 직원의 지인 추천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직원이 아는 사람을 추천하고 채용이 되면 직원에게도 수수료를 주는 식이다. 언론업계에서도 ‘출입처’에서 눈여겨 본 선후배가 있으면 회사로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채용절차보다 ‘소개’가 훨씬 믿을만 하기 때문이다. 원티드랩은 이같은 ‘지인 추천’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시킨 회사다.
“사업 아이템을 정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모았다.”
이복기 원티드랩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엑센추어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회사를 잘 다니다가 35세에 무작정 퇴사했다. 아이템도 없었다. 다만 “더 늦으면 못하겠다” 싶었고 “세상에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내가 풀 문제 하나 없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첫 창업은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관광 상품 구매 사이트였다. 잘 안됐다. 잘 모르는 분야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한국사람도 아닌 외국인을 대상으로 뭘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 창업은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했다. 일단 창업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을 모았다.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만났다. NHN엔터테인먼트,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거친 황리건 이사, 다음 개발자 출신 허재창 이사, HR스타트업 창업 경력이 있는 김세훈 이사 등 4명이 뭉쳤다. 이 대표는 “일단 드림팀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원칙을 정하고 그에 맞춰 아이템을 골랐다.”
아이템은 그 다음에 골랐다. 원칙은 네가지였다. 1) 잠깐의 트렌드가 아닌 영원히 지속되는 인류 숙제인가 2) 사회적으로 충분한 임팩트가 있는가 3) 실현 가능한가 4) 돈을 벌 수 있는가. 무려 11개월을 이렇게 고민했다. 그 결과 채용 알선 시장이 떠올랐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요즘은 이 대표처럼 아이템보다 사람을 먼저 찾고 창업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컨설팅 업체 출신들이 그렇다. 이들은 멤버를 구성하고→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여러 아이템을 고르고→토너먼트 방식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최종 아이템을 선정하고→다시 시장 분석을 통해 경쟁 상대가 없는지를 알아본 뒤 창업하는 식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창업 방식은 좋은 인재를 갖추고 시작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 유치에 유리하고, 철저한 시장 분석을 선행했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기존 시장의 빈틈을 찾았다.”
여하튼 이 대표는 구인구직 시장을 살펴봤다. “‘잡포탈’이라 불리는 사이트들은 기업들의 구인 광고만 띄워주고 끝입니다.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요. 헤드헌터들은 결과에 책임을 지지만 개개인이 움직이다보니 효율적이지 않죠. 이 둘을 합하면 재밋는 모델이 나올 것 같았어요.”
원티드는 구인 공고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해당 공고를 지인에게 추천해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놨다. 각종 메신저를 통해 지인들이 직접 알맞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추천하는 식이다. 필요한 경우 추천서도 쓸 수 있다. 그렇게 채용이 되면 기업에서 월급의 7%정도를 사례비로 받는다. 헤드헌터들의 평균 수수료인 월급의 10~20%보다 낮춰 잡았다. 이 정도만 해도 ‘규모의 경제’만 확보하면 충분히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헤드헌터들이 보통 월급의 10%이상을 수수료로 받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추천인들도 ‘짭짤한’ 수입거리가 된다. 몇명만 잘 소개해도 수십만~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
“초기에 시장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았다.”
처음부터 구인광고를 모아 띄운 건 아니다. 처음엔 이 대표를 포함한 공동창업자들이 자신들의 지인 중 이직을 원하는 100여명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창업자들이 모두 괜찮은 직장의 30대 중반이었던 것이 유리했다”고 말했다. 대리, 과장, 차장급 중 대기업이나 잘나가는 스타트업, IT기업 출신은 이직 시장에서 몸값이 제일 높다. 모인 100명은 다들 30대 중반의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 주요 기업 출신이었다. “원티드를 통해 채용하면 믿을만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입소문을 내기 위해서였다. 이 작전은 어느 정도 먹혔다. 적극적인 페이스북 마케팅을 동반하자 적지 않은 스타트업들이 원티드에 채용을 맡겼다.
“고난의 행군을 거쳤다.”
하지만 회사를 키우려면 대기업의 채용을 맡아야 했다. 여기서부터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찾아다니고 연락을 돌리고 ‘콜드 메일’을 보내고 답이 없으면 6개월쯤 뒤에 또 했다. “잡상인 취급도 여러번 받았다”고 했다.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이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이 대표는 지인에게 계속 회사 소개 자료를 인사팀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금은 SK텔레콤, 카카오 등 적지 않은 대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이제 해외로도 나간다.”
원티드는 2015년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제 만 2년밖에 안됐지만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창업 첫해 초기 투자로만 17억원을 받았고 현재 추가 투자 유치를 진행중이다. 현재 월 50~100건의 채용을 성사시키는데, 이 정도면 전체 채용 알선 시장에서 10위 이내에 든다고 한다.
일본에도 진출했다. 원티드의 ‘고객’중 한명이 서비스가 너무 좋아 이 대표에게 일본진출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일본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인데다가 출산율도 낮아 기업들이 경력자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며 “채용에 따른 사례비도 월급의 30~100%수준으로 높아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원티드와 비슷한 모델도 없다고 한다.
머신러닝을 활용한 구인 구직자 매치업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이제까지 약 3만건의 합격, 불합격 데이터를 모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머신러닝을 돌려 채용 프로세스를 더 효율적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이력서에 어떤 키워드를 넣은 사람이 어떤 기업의 요구와 만났을 때 합격하더라 이런 걸 만드는 것이다.
인력 시장은 크다. 인력 스타트업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소개를 통한 채용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원티드만큼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이제는 ‘정석’같은 얘기들이지만 좋은 창업 멤버, 철저한 시장조사, ‘린’한 시작, ‘고난의 행군’을 통과할만한 의지 같은 것의 총합이 아닐까. 이렇다할 경쟁자도 없는데다, 세월이 쌓이는 만큼 유리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대표는 “지인 추천의 일상화와 채용 프로세스의 자동화가 목표”라고 말했다. 시스템만 잘 구축해 놓으면 알아서 회사가 커지고 돈이 벌리는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