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나 시계 등 가죽 제품으로 사랑 받는 파슬은 1984년 미국 텍사스의 한 대학생이 동아시아에서 시계를 수입하며 시작한 회사다. 다른 브랜드처럼 파슬도 모든 부품을 직접 제작하지는 않는다. 가방이나 지갑 등에 사용되는 자석 잠금장치의 경우, 2002년부터 로매그(Romag Fasteners, Inc.)가 부품을 공급했다. 2010년, 로매그 측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파슬 핸드백에 가짜 로매그 잠금장치가 사용된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파슬에 특허와 상표 침해 소송을 건다.
로매그는 파슬이 로매그와 관련이 없는 중국 공장이 만든 짝퉁 부품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공장에서는 로매그의 잠금장치 특허를 카피한 제품을 만들고, 제품에 ROMAG의 이름이 적힌 부분까지 정품을 본따 만들었다. 기술을 따라한 부분은 특허 침해, 브랜드 이름인 ‘ROMAG’를 사용한 부분은 상표 침해에 해당한다.
2014년 나온 일심에서 배심원은 파슬이 로매그에 손해배상 15만 6천 달러를 지불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파슬이 중국산 로매그 잠금장치가 위조품인 것을 알았다면 짝퉁 로매그 잠금장치로 만든 제품의 판매 수익금 670만 달러도 로매그에 반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위조품인지, 불법적인 제품인지 파슬이 알고 있었나’가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파슬은 위조품 로매그 잠금장치를 사용한 것은 ‘실수였다’라고 주장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1심 법원은 파슬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일부러 로매그 상표를 침해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로매그가 670만 달러를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2심도 동일한 결과였다.
로매그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로매그는 비록 실수였어도 파슬이 핸드백 판매 수익을 반환해야한다며 케이스를 대법원으로 가져갔다. 대법원은 하급 법원들과 달리 로매그의 손을 들어줬다.
상표 희석 (dilution) 케이스에서 손해배상 금액을 산정할 때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알고 있었는지가 필수 요소지만 로매그 케이스에 적용되는 상표 침해 (infringement)에서는 상표 침해자(파슬)가 상표 권리자(로매그)의 상표권을 알고 있는 것이 필수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파슬이 일부러 짝퉁 로매그 잠금장치를 사용했는지 실수로 문제의 중국 공장과 거래를 했는지와는 무관하게, 파슬은 짝퉁 로매그를 사용한 제품 수익금을 로매그에게 돌려주게 됐다.
우리 회사가 상표 등록을 해놓았다면 이 판례로 인해 앞으로 기존보다 수월하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상대방이 내 상표를 알고 있었는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판매 이익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할 일이 줄었으니 상표권자가 상표 침해 소송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세업체의 경우 소장을 보내기보다는 받는 일이 더 많다. 99%의 경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의도는 꿈에도 없던 분들이다. 그래서 사과를 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경우가 많다. 파슬과 로매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법적으로는 ‘실수였습니다’라는 주장이 전혀 방패가 되지 않는다.
실수가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항상 판매 전 상표나 특허, 저작권 등 권리관계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특히 아마존이나 이베이, 쇼피파이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와 상표 검색을 진행하고 판매 전 상표 등록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송을 당한 후 대응하는 것 보다 소송을 당하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상표나 특허 권리자인 경우에는 꾸준히 우리 회사의 지식재산권을 모니터링 하는 것이 좋다. 임시방편으로 Google Alerts 등을 설정하는 방법이 있지만 보다 자세하고 폭 넓은 조사를 위해서는 변호사와 진행이 적합하다. 잘 키우던 비즈니스가 작은 ‘실수’로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