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236)헤이딜러(PRND) 박진우 대표
중고차 가격 비교 앱 헤이딜러를 서비스하는 PRND는 설립된 지 고작 2년여밖에 안 된 스타트업이지만 이제는 상당히 유명한 회사가 됐다. PRND 설립자인 박진우 대표는 20대의 젊은 나이, 아직 학생 신분에 창업을 했다. 처음부터 그가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주거나 정말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큰(?) 꿈과 포부를 갖고 창업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사실 별로 중요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했고,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으며, 이런 변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중고차 딜러가 된 대학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09학번인 PRND 창업자 박진우. 사범대를 다녔지만 그는 대학 1학년 때부터 학교 강단에 서는 것보다 창업에 꿈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 벤처창업 동아리(SNUSV)에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거기서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동아리에서 같은 학교 컴퓨터공학과 09학번인 김지환을 만났어요. 나중에 같이 창업을 했죠.”
그는 중고차 시장에 큰 기회가 있다고 봤다. 중고차 시장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에게 불만과 불안을 안겨주는 시장이고 그래서 이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사업적으로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학생 신분인 그는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직접 중고차 딜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학교를 휴학하고 2014년1월부터 그해 말까지 1년 동안 중고차 딜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중고차 딜러 생활을 하면서 그는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파는 소비자와 이를 매입해가는 딜러 모두에게 불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가격을 주고 차를 구입해도 소비자들은 정보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합리적으로 차를 처분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면 딜러들의 경우에는 누가 차를 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차를 파는 사람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갈증이 있었구요.”
차를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딜러 등 모든 시장 참여자가 일단 가격에 대한 불만이 존재하는 시장이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제한과 불투명한 시장이라는 시장의 독특한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속임수와 불친절, 무질서 등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생각하다보면 중고차를 사고 파는 것을 생각만 해도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너무나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
박 대표는 복잡한 중고차 거래 흐름에서 딱 한 가지 시장만 파고들기로 했다. 그가 선택한 과정을 보면 일단 매우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다 바꾸려하지 않고 딱 한가지 포인트에만 변화를 주되, 해외에서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모델을 도입했다. 바로 중고차 매입가격 비교 서비스였다.
“해외의 중고차 가격비교 서비스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에서 하고 있는 중고차 매입가격 비교 서비스 중 시장점유율이 높은 업체들을 분석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2010년에 나온 매입업체 견적비교 웹서비스가 이미 중고차 물량의 30%를 공급하는 거대 플랫폼으로 발전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헤이딜러와 같은 역경매 모델인 미국의 트루카 역시 지난 2014년 주식공개상장(IPO)를 진행할 만큼 성장했구요.”
중고차 딜러 생활을 하면서 그와 김지환, 그리고 함께 중고차 딜러 일을 했던 김수현 등 3명은 2014년 8월 PRND를 설립했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
2015년 1월 출시된 중고차 매입 가격 비교 서비스 헤이딜러는 소비자들이 차를 팔기 위해 정보를 올리면 이 정보를 본 딜러들이 얼마에 살 것인지 가격을 올리는 매우 심플한 서비스다. 소비자들은 이 중 마음에 드는 가격과 딜러를 선택해 거래를 진행하면 된다.
흔히들 자신이 타던 차를 팔 때 새 차를 사기 위해 기존 차를 파는 사람은 신차 딜러를 통해 차량 판매를 맡긴다. 이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차딜러-중고차 딜러-경매상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수수료가 늘어나고, 결국 차 가격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보가 제한돼 있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이래저래 귀챦은 이들에게는 이게 나을 수도 있다. 품을 들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서류 등을 잘 챙기거나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직거래를 선택할 수도 있다. 직거래를 선택할 경우 가격은 더 잘 받을 수 있지만 상당히 귀챦고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런데 신차 딜러에게 차를 맡기고 팔아달라고 할 때 만큼 편리하면서도, 가격을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을 리 없다. 즉 거래의 복잡하고 귀챦고 불안한 과정은 헤이딜러가 다 해주면서,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더 주겠다는 게 헤이딜러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이게 시장에서 통했다.
소비자들은 기껏해야 한두군데 딜러에게 차량 매입 의사를 타진해볼 수 있었지만 헤이딜러를 통하면 헤이딜러에 등록된 전국 1000여명의 딜러 중 최소 10여 명의 딜러들로부터 매입 가격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 딜러들끼리는 서로 다른 딜러들이 어떤 가격을 제시했는지 알 수 업다. 아무래도 10여곳의 딜러들이 가격을 제시하면 서로 다른, 다양한 가격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넓어진 것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나온 지 1년도 안돼 누적 거래액이 3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순항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터졌다. 기존 사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대표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성태 의원은 오프라인 중고차 업계가 많이 모여 있는 서울 강서구 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국회의원이다. 개정법에는 온라인 자동차 경매업체도 오프라인 영업장(3300㎡ 이상 주차장, 200㎡ 이상 경매실, 50㎡의 차량성능점검·검사 시설 등)과 사무실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오프라인의 자동차 경매상들은 어찌됐든 헤이딜러와 경쟁관계에 있다. 이들이 이해관계를 어떻게 강하게 어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의견이 관철된 법안이 통과된 셈이다. 즉 헤이딜러와 같은 온라인 자동차 경매 사이트도 오프라인 경매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 당연히 헤이딜러는 이런 시설이 없었다. 헤이딜러는 딜러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이런 시설을 둘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서비스를 해 왔다.
수십 억 원이 필요한 시설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박 대표는 결국 2016년 1월 폐업선언을 하고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러나 소비자의 지지를 받던 ‘헤이딜러’의 폐업 선언이 알려지자마자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가 기업을 망친다’는 목소리가 언론과 소비자의 입을 통해 즉각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택시를 잡기 어려운 시간대에 안전한 귀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전세버스 중개 서비스 콜버스 역시 택시업계 등의 반발로 서비스가 좌초 위기를 겪는 일이 발생했다. 헤이딜러와 콜버스 사례는 창조경제를 내세워 청년 창업을 독려했던 정부 정책과 배치되는 사례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정부와 업계 관계자,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매매업 발전 민·관 합동 협의회’를 구성해 회의를 열고 논의에 착수했다. 기존 업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헤이딜러의 회생을 적극 지원하고 적절한 법령해석을 통해 합법화 추진한다고 밝혔다. 김성태 의원도 스스로 발의한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헤이딜러’는 폐업 선언 50여 일만에 기사회생하게 됐고, 곧 이어 3월 SV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벤처투자, 메커니즘엔젤펀드 등으로부터 총 16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50일 동안 사업을 중단했다가 3월에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죠. 아직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해 당사자들과 정부, 국회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소비자들의 편의를 높이면서 업계를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기회와 안전한 거래
헤이딜러가 결국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를 재개하고, 성장하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장 참여자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확실하게 혜택을 주기 때문 아닐까. 이런 가정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비스를 직접 써 보는 것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소개하는 모든 서비스를 이용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헤이딜러 서비스는 나도 사용을 해 봤다. 때마침 차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와서 헤이딜러를 통해 차를 올려놓고 판매를 진행했다. 물론 당연히 다른 루트로도 차 판매 견적을 뽑아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차 사진을 찍어서 올려놓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량에 대한 정보를 올리는 것도 간단했다. 차량 정보를 올리자마자 발빠른 몇몇 딜러들이 차량 매입 희망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예전이 알던 딜러, 또는 신차 구매시 딜러에게 맡기는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즉 비슷비슷한 가격들이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새롭게 헤이딜러에 진입, 고객을 확보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싶어하는 딜러들이 생각보다 높은 가격을 써 낸 것이다. 그 중에는 확실히 주위의 어떤 딜러에게 문의해도 나올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딜러를 선택하자 바로 연락이 왔고, 딜러와 내가 거래를 한다는 내역이 PRND에도 통보가 됐다. 안전한 거래를 헤이딜러가 보장해주는 가운데 딜러가 직접 소비자를 찾아와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가격에 대한 큰 논란이 없으면 매물을 올려놓고 48시간 내에 딜러가 결정되고, 그 뒤 하루 이틀 새에 모든 거래가 끝난다.
그런데 거래를 진행하면서 차를 올려놓는 사람 뿐 아니라 딜러들에게도 헤이딜러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헤이딜러를 통해 차를 팔 계획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영업력이나 인맥이 부족해 정보가 적었던 딜러들에게는 꽤 괜챦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물론 헤이딜러가 상당히 까다롭게 딜러를 심사하고 시차를 두면서 등록을 하기 때문에 번거로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게 소비자들에게 더 신뢰를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헤이딜러는 등록된 딜러들에게 가격 후려치기, 말 바꾸기, 불친절 등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까다롭게 관리하면서 등록을 했다가 내보낸 딜러도 500여명에 달한다. 가입 대기는 700명이 넘는 상황.
“예전에도 매입 가격 비교 서비스는 있었어요. 그런데 룰이 지켜지지 않았죠. 모바일 거래가 되지 않는 불편함도 있었구요. 룰을 지키게 하면서 모바일로 편리하게 거래를 하게 하는 게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딜러들의 헤이딜러에 대한 호불호는 크게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는 “좋아하지 않는 딜러들이 더 많을 것”이라면서도 “딜러들에게도 결국 좋은 방향으로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거래에 있어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격 측면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거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직거래뿐이다. 딜러가 개입하는 순간, 가격 측면에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딜러 제도를 부인할 수도 없다. 딜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중고차 거래 과정의 불편함이 싫은 이들에게는 딜러들이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헤이딜러를 기존 딜러제도를 발판으로 성장해야 하는 서비스다.
“제가 딜러를 해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중고차 딜러들의 80%가 중도에 그만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딜러들도 고달픈 일이란 거죠. 딜러들도 충분히 원하는 정보를 얻으면서,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게 해 주는 것. 그렇게 되면 중고차 거래 과정의 불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고 시장이 변화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