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237)소울부스터 박수영 대표
지금까지 속옷에 대단한 혁신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속옷에 대단한 혁신이 필요한 걸까. 어쨌든 옷감이 아무리 좋아지고 색이 아무리 화려지고, 희한한 디자인이 나온다고 해도 어쨌든 속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잘 맞고 편해야한다는 거 아닐까.
여성 속옷쪽은 잘 모르지만 남성 속옷만 해도 같은 사이즈, 같은 브랜드, 비슷한 질감과 스타일의 속옷을 사도 살 때마다 뭔가 들쑥날쑥하고 잘 안 맞거나 편함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분명히 있다. 속옷 시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 문제를 바꾸면 어떤 기회가 있을까. 얼마나 사람들에게 이로울까. 속옷 시장을 바꿔 보겠다고 당차게 사업을 시작한 소울부스터 박수영 대표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시작도 못 해 보고 접은 첫 창업
박 대표는 회계사였다.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을 거치며 2년 남짓 일했다. 그쪽 업계의 전문 용어로 시즌을 4차례 돌았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졸업 전에 이미 CPA에 합격했다. 당연한 수순인듯 회계법인에 들어가 일했지만 그는 내심 창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게 그의 결심.
삼일에서 삼정으로 옮긴 이유도 사업을 하려면 M&A 딜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해당 분야의 업무에 자리가 났는데, 여성이 아닌 남성을 뽑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었던 박수영 대표는 콜드콜(Cold Call)을 걸었다고 한다. “안 뽑아도 좋으니 일단 면접이라도 한 번 보게 해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들어갔죠.”
안되면 되게 하든지, 안되더라도 부딪혀보든지. 원하던 일을 하게 된 후 박 대표의 그 다음 계획이 실행됐다. 창업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 ‘멋쟁이 사자처럼’을 통해 코딩을 배우는 게 그의 다음 계획이었다. 2014년 하반기는 낮에는 회사 일을 하랴, 밤에는 코딩 숙제를 하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석 달 동안 배우는 과정인데, 정말 너무 힘이 들더군요. 배우는 기간 중에는 다른 일 안하고 온전히 코딩 배우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더라구요.”
바쁜 일과를 쪼개 코딩을 배운 건 창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온전히 과정을 끝내지 못했다는 게 부담이 됐다. 어쨌든 그는 이미 마음 속에 창업을 하고픈 아이템이 있었고, 그것을 하기 위해선 개발력이 필수였다. 자신이 혼자서 하려고 했던 마음을 버리고 그는 개발자로 구성된 팀을 찾아 다녔다. 다행히(?) 때마침 개발자들끼리만 모여 경영자를 찾던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팀을 합쳤죠.”
그는 자동 기장 프로그램으로 사업을 하려고 했다. 정교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엔지니어링이 가장 중요했고 본인이 직접 개발을 다 책임질 게 아니라면 개발팀과의 협업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됐다. “서로 스타일이 너무 달랐고, 잘 안 맞았어요. 안되겠다 싶었죠. 결국 팀을 해체했어요.”
2015년2월 창업을 하겠다고 기세 좋게 삼정회계법인을 박차고 나온 지 불과 몇 달 안 돼 너무 빨리 결정된 첫 실패였다. 재무적 손실도 있었다. 그래도 그의 뜻은 꺾이지 않은 듯 했다. 아니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그래도 시간은 필요했다. 손실도 메꿔야했다. 무엇보다 첫 실패에서 배운 바를 정리하고 넘어가야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상인 DNA
“다시는 그런 식의 창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박수영 대표가 첫 실패 때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어떤 식의 창업을 말하는 걸까.
“내가 온전히 잘 알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식의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시도에서 시작조차 못하고 팀을 해체한 뒤 그는 자신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도움을 얻고 조언을 구하지 않고도 해 낼 수 있는 일이 뭔지. 결론은 패션, 아니 속옷이었다!
옷에 관심이 많거나 잘 입고 다니거나, 그런 사람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말한 것은 그런 관심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의류 유통업을 하셨어요. 지방에서 브랜드 의류를 파는 사업을 하셨던 거죠.”
아하. 뭔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속옷 사업을 한다고 뛰어든 걸까. 궁금했던 부분이 조금씩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20년 넘게 의류 유통업을 하신 어머니가 옷 파는 걸 보면서 자랐어요. 고향이 강릉인데, 지방에서 숙녀복을 판매하셨거든요. 어머니는 옷을 권할 때 두 가지를 보셨어요. 체형과 얼굴색.”
옆에서 곁눈질만 한 건 아니었다. 대학생때 그는 어머니의 의류유통 대리점 가운데 하나를 직접 운영해 매출을 크게 끌어올리는 경험도 했다고 한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하면서 사업의 묘미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는 여성들의 옷차림을 보면 단박에 체형에 잘 맞지 않은 속옷(브래지어)을 입었는지 알아차린다고 했다. 체형에 비해 너무 큰 사이즈의 브래지어를 했거나, 사이즈만 보고 속옷을 사 입어서 불편해하거나, 겉옷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등등. 속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 생기는 불편함이나 문제점은 많다. 이걸 간파해내고 조언을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그녀에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냈지만 사실 진작부터 어머니는 그가 사업가의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냥 회계법인에 들어갔으니 회사를 잘 다니다가 결혼하는 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사업이 너무 힘든 길이라는 걸 워낙 잘 아시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겠죠. 그래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어요. 어머니께도 말씀드렸죠. ‘엄마 내가 엄마가 하라는 것만 하면서 불행하게 사는 게 엄마에게도 과연 좋은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엄마에게도 행복이 아닐까’ 이렇게요.”
어쨌든 자식 고집을 꺾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의 반대는 그가 삼정으로 옮겨 사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와 다투고, 논쟁을 서슴치 않으면서도 사업가의 길로 차근차근 갔다. 그리고 첫 사업에 실패 후 낙담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불어넣어준 이는 결국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의류 사업의 비즈니스 사이클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옐로모바일의 패션사업부에 들어갔다. 거기서 의류 업계의 속성과 프로덕트 사이클을 공부했다.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필요는 없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고 그는 실제로 4개월여 만에 배움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패스트트랙아시아(FTA)의 박지웅 대표를 만나게 된다.
이제, 속옷에 몸을 맞추지 말자
FTA의 CEO 프로그램은 2011년부터 시작된 CEO 및 컴퍼니 육성 프로그램이다. 컴퍼니빌더인 FTA가 지원을 받아 심사, 함께 사업을 키워나갈 만한 기업가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박수영 대표는 FTA CEO 프로그램의 첫 여성CEO로 선정됐다.
FTA의 선발 과정에서 박 대표는 기존 속옷 산업에 대한 관점과 앞으로 혁신해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FTA와 생각을 같이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여성 커뮤니티를 전수 조사하고 관련 키워드로 약 3만여개의 댓글을 분석, 여성 속옷에 대한 잠재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파악해 낸 것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 대표의 문제의식은 이거였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도 수시로 제기된 문제였다.
“엄마와 딸이 입는 속옷 브랜드가 같을 정도로 혁신이 없는 기존 여성 속옷 시장.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국내 여성 속옷 시장은 1조원에 달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정확한 속옷 사이즈나 특성은 모르고 불편하면서도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그냥 입고 있어요.”
박 대표는 소울부스터를 창업하면서 속옷을 안에 입는 옷, 내의의 관점이 아니라 패션 스타일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여성의 멋진 스타일이 체형을 기반으로 한 속옷에서 시작된다는 관점이다.
“사명이 왜 소울부스터인가요?”
“속옷을 잘 입으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긴다는 뜻에서 지은 겁니다. 하하. 이름이 어떤가요?”
7월21일 법인을 설립하고 올 11월쯤 첫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그 전에 중요한 것이 어떤 상품을 제공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 소울부스터를 통해 속옷을 구매하면 퀴즈를 통해 내게 가장 잘 맞는 속옷을 추천해 준다.
“데이터 기반 추천 알고리즘입니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코딩을 배운 게 이럴 때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소울부스터는 여성의 신체 중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토르소의 패턴을 8가지로 분류하고 키와 토르소 패턴의 조합으로 여성의 체형을 스타일링과 연결, 20가지에서 30가지 정도로 다시 분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소울부스터의 비밀의 퀴즈! 살짝 어떤 퀴즈인지 알려달라고 했으나 단호히 거부당했다. 정말 비밀의 퀴즈다. 하여간 이 퀴즈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신체 특성이나 취향에 대해 답하면서 알게 되는 그런 퀴즈인 것 같다. 이를 바탕으로 소울부스터는 여성의 가슴 패턴을 수십개로 분류해 신체 특성과 겉옷과의 조화를 감안한 보정 기능을 넣어서 고객에게 추천하게 된다.
속옷을 입으면 정말 자존감이 높아지게 될까. 일단 편하고 좋은, 멋진 속옷을 입으면 왠지 하루 기분을 좋게 시작하는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잘 되면 남성 속옷 시장도 잊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다음은 박수영 대표의 클로징 멘트.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개인이 가진 아름다운 영혼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체형적인 한계 때문에 입을 수 있는 옷의 종류가 제한되지 않도록, 더 이상 속옷에 몸을 맞추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소울부스터가 속옷을 만들고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하루의 시작이 달라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