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에 걸쳐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 제품을 만들었다. 멤버도 잘 모았고 자금도 꽤 있었고 시장에서 반응도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실패를 거친 후 그는 거품을 완전히 걷어낸 것처럼 보였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게 됐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다고 한번도 생각한 분야가 아니었지만 시장에서 정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그런 분야의 일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과가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 2017’에서 만난 윤정섭 methinks 대표는 자신의 스토리를 ‘실리콘밸리에서의 실패’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결코 실패한 사람은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그는 또 다른 성공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10여년 전 처음 미국에서 만나 알게 된 그가 이렇게 다시 멋지게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95학번인 윤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니를 거쳐 NHN에 입사했다. 한국에서는 1년만 근무했고 2006년1월 미국 법인으로 넘어갔다.처음엔 샌프란시스코에 있었지만 나중에 법인이 이전을 하면서 LA로 옮기게 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를 처음 본 것은 아마 미국 법인 초창기였을 것이다. 2010년초에 그는 NHN을 나와 OUTSPARK라는 미국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NHN USA의 대표를 맡기도 했던 그는 OUTSPARK에서도 대표를 맡았고 2013년에는 잠깐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 회사의 CEO를 차례로 맡아 본 그는 “준비가 됐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내 일을 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13년에 제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했다. 2006년부터 미국에 나와 있었고 어느덧 미국에서 경략을 꽤나 쌓은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시장에 이런 것이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아이템을 골랐다. 소셜게임이었다. 그것도 여느 게임과 다른, ‘아름다운’게임이었다.
“사람들 중독시켜서 등골까지 빼먹는 그런 게임 말구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소셜게임, 친구와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 말입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했다. 미국 생활을 상당히 한 그 역시 사람 욕심이 있었다. 6개월 동안 함께 창업할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MIT 박사 출신,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출신의 인재, 징가 출신의 인물,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인재도 영입했다.
“창업을 할 때 팀-프로덕트-마켓 이렇게 세 가지를 보는데요, 팀은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덕트도 자신 있었구요. 시장도 있다고 봤습니다. ”
첫번째 실패..서비스 리텐션 급락
자금도 한국 돈으로 5억원 가량 모았다. 2014년 1월에 첫 제품이 출시됐다. 제품이 나오고 나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트래픽이 급격하게 늘었다.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런데 잠깐이었다. 왜 그랬을까. 계속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많지 않았다. 이른바 ‘리텐션’(잔존율)이 엉망이었다. 그가 보여준 표를 보니 제품이 나오고 나서 일주일만에 리텐션율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이래가지고는 서비스를 계속 할 수가 없다. 결국 2014년 5월에 실패 선언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금이 아직 1억원 이상 남아 있었다. 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첫번째 제품에서 프로덕트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소셜게임을 만들되 가족 항목을 뺐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소셜게임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이 과정에서 초기 멤버 두명이 회사를 나갔다. 윤정섭 대표는 “팀원들끼리 의견이 안 맞고 다음 행보를 고민하다 보면 갈라질 수 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중요한 팀원이 2명 나갔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남은 사람이 하면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만들어봤으니 조금 수정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제품도 출시 못하고 두 번째 실패
우리가 타깃으로 삼은 시장은 뭘까? 사실 창업 초기에 고민을 했어야 하는 문제다. 그는 “제품을 만들어서 한 번 실패를 겪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창업가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20대후반에서 30대. 도시에 살고 대학 학위를 갖고 있고 4만5000달러 이상 버는 사람. 이게 윤 대표와 그 창업팀이 상정한 대표적인 고객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실제 제품을 출시하고 나니 여성들이 고객의 80%를 차지했다. “출시하기 전에는 여성이 55%, 남성이 45%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여성 고객들이 너무 많아서 당황했죠. 팀원 중에 여성은 아무도 없는데 고객은 대부분 여성. 어떤 시장으로 가야하나 계속 고민했어요.”
“한 번 실패하고 나니 다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심지어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아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이어졌다. 리더십 위기가 왔다. “두번째 실패가 왔죠. 이번에는 제품을 런칭도 못 해 보고 그냥 접었습니다.”
이 와중에 또 창업 초기 멤버 2명이 나갔다. 윤 대표와 칼 두 사람만 남았다. 수중에 돈은 달랑 300만원. UX를 맡은 윤 대표와 밴엔드오퍼레이션을 맡은 칼 두 사람이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 “둘이서 그냥 해 보자고 했습니다. 둘이서 코딩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펀딩은 돈이 없으니 맨몸으로 버티기로 했구요.”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2015년 10월에 서비스 베타 버전을 만들면서 윤 대표는 “여전히 같은 고민을 했다. 해결되지가 않았다”고 했다. 그 고민은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때까지도 소셜게임을 만들고 있었지만 우리 제품을 쓰는 고객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들에게 제품도 팔아보고 써 보게 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반영도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기 전에 고객군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방법은 있었다. 5만 달러를 내고 포커스그룹 마케팅을 진행하면 된다. 여기서 윤 대표는 다시 한번 피보팅을 결심한다. 게임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간 창업을 하고 제품을 만들면서 가장 골치 아팠던 문제, 즉 ‘타깃 사용자 찾기’가 아이템이 됐다. 서비스의 타깃 사용자를 찾아서 매칭하는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힘든 시기에 과거 인맥이 도움이 됐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등이 엔젤투자를 했다.
9개월을 버텨서 다시 제품을 만들고 2016년 9월에 런칭했다. 이게 현재의 사용자 조사 비디오챗 플랫폼 ‘methinks’다. 미띵스는 마케팅 조사 기법 중 하나인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온라인·모바일에서 가능하게 만든 플랫폼. 기업이 조사 대상자를 모집하고, 조사 진행 후 보상을 지불하는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 기업이 조사 내용에 대한 공고를 올리면 사용자는 지원할 수 있고, 비디오채팅으로 다자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세번째 도전..리텐션 100% 육박”
”한번 사용한 고객이 다음에도 반드시 사용합니다. 그게 가장 좋습니다.“ 처음 아이템에서 잔존율때문에 고생해서일까, 이 말을 하는 윤 대표의 표정은 정말 기뻐보였다. 계속 B2C 제품을 만들었던 그는 methinks를 하면서 B2B 비즈니스로 전환했다. 타깃 고객을 대상으로 알파 버전 또는 프로토타입 수준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테스트해보려는 기업들이 대상이다. 참여자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은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모집하고 이들을 모집단으로 해서 테스트단을 꾸리는 것이다. 한 번 썼던 고객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만족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기업 고객이 계속 늘어났다. 아직은 미국 고객이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고객도 늘어나고 있다. 소규모 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고객이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대형 게임업체들도 methinks의 고객이 됐다. 심지어 VC들도 고객이다. 재밌는 포인트다. 왜 VC가 이 제품을 쓸까. ”투자하려는 기업이 있을텐데, 이 회사의 제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쓰고,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은 거죠. 객관적으로 실제 사용자의 반응을 볼 수 있거든요.“
그가 보여준 비디오챗을 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사용자와 methinks의 직원이 비디오챗으로 대화를 하는데 테스트를 진행하는 서비스 화면을 띄워놓고 리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화 내용, 지적 사항 등은 전부 저장이 된다. 냉정한 소비자의 평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번 실패를 하면서 그는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겐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아내 보기 미안해 이번에도 안되면 창업 그만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차가 없으면 못 다닐 것 같은 미국 생활이지만, 그는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며 차도 팔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다니고 있다고 했다. 창피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으로 열심히 해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자. 이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 고객도 생기면서 한국에도 자주 들어온다고 했다. 그를 만난 날 methinks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투자 유치도 했다. 본엔젤스 외에 미국의 트랜스링크와 한국의 캡스톤이 함께 투자에 참여했다. 좋은 투자자를 만나 그는 다시 가슴뛰는 도전을 하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듯 했다.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에겐 별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다음에 들어올 때 다시 보기로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